- 니땜시 산다 – 문화와 마을의 만남이 되비추는 삶의 자리
예산만 퍼붓는 문화도시는 끝났다. 다음 치트키는 ‘돌봄의 재정의’

마을은 무엇의 이름인가
우리는 습관적으로 '마을'을 따스한 공동체적 정취가 살아있는 유토피아로 상상한다. 간디가 스와라지 운동을 통해 설파했던 마을 자치 공동체는 제국주의에 맞서는 저항의 기초 단위였으나, 동시에 그 내부는 철저한 위계와 차별의 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현대 인도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암베드카르는 마을이야말로 카스트 제도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가장 견고하게 작동하는 지역주의의 소굴이자 무지와 편견의 온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오늘, 여기에서도 마을은 무조건적인 선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정겨운 고향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숨 막히는 감시와 배타적 연고주의가 작동하는 권력의 장이다. <폭삭 속았수다> 같은 드라마에서 보이는 마을 주민들의 상호부조와 따스한 정은, <이끼> 같은 작품에서는 끈적한 권력과 상호감시망의 악몽이 되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시 마을에 주목하는 이유는, 국가와 시장이 효율성을 이유로 포기해버린 '삶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물리적 실체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암에서 열린 문화기획자와 마을활동가들의 만남은 이 위태로운 마을이라는 자리에 문화가 어떻게 개입하여 생존의 문법을 다시 써 내려가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영암, 방파제 너머의 안부를 묻다
3월 20일과 21일 1박 2일로 전남 영암군 가야금산조공연장에서 열린 '2026 전국 문화 활동 사례 공유대회'는 '방파제 너머의 안부'라는 부제 아래 전국의 문화 주체들을 호명해 서로 마주하게 했다. 단순히 성공 사례를 뽐내는 전시의 장이 아니라 인구 소멸이라는 거대한 해일 앞에서 방파제를 쌓고, 그 너머에 고립된 이들의 안부를 묻는 절박한 실천들이 교차하는 자리였다.
대회는 각 지역에서 발표한 마을의 생존 문법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문화연대 이원재 집행위원장은 ‘비슷해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데 연결해야 하는 시대-문화정책의 방향, 도시에서 마을로’라는 발표를 통해 문화도시의 전개 양상과 문화도시 3.0의 가치지향을 제안했다. 요약하면 문화가 도시의 부가적인 장식이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의 토대로, 시민의 생존과 삶의 질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원리로서 작동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마을을 단순 행정구역으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자본과 국가의 논리가 미치지 않는 공통장으로 재정의하고, 문화자치를 위한 시민주도 자원연계 전략으로서의 문화커먼즈를 적극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진 발표에서 문화기획자와 마을활동가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길어올린 경험과 소중한 성찰을 나누어주었다. 영도와, 태백, 광주와 영암, 강릉과 인천, 진안의 이야기들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이웃의 밥상을 살피고 혼자 사는 어르신의 안부를 확인하는 구체적인 행위로부터 관계의 축적과 문화적 실천이 시작됨을 보여주었다. 지역에서 구체적인 주민들의 삶과 마주하며 만들어진 각자의 이야기는 청중들에게 마을에서 문화가 갖는 힘, 밀도있는 관계가 갖는 폭발력에 대해 생각하도록 해주었다.

돌봄으로 매개되는 마을 공동체의 재설계
거의 모든 발표에서 키워드로 삼을 만한 것은 돌봄의 재구성, 또는 돌봄의 재정의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전 문화도시 정책이 인프라와 거버넌스, 콘텐츠 산업에 집중했다면, 앞으로의 문화도시는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터인 마을을 기반으로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와 마을을 잇는 매개가 바로 돌봄이다. 돌봄은 더 이상 복지의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문화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감각하고 연결하는 행위 자체가 가장 강력한 사회적 안전망이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주민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과정에 연극적 요소나 시각적 기록이 결합될 때 돌봄은 단순한 시혜를 넘어 즐거운 축제적 경험으로 승화된다는 것을 이 날의 사례들은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돌봄의 탈가족화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껏 돌봄은 사적인 영역으로 한정되는 측면이 있었고, 사회적으로 논의될 때도 복지의 틀을 벗어니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이제 돌봄은 사회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단단한 축으로서 여성이나 가족에게 전가된 사적의무를 넘어 공동체가 보장해야 할 공적 권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결국 마을이라는 공간이 갖는 위계적 성격이나 폐쇄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그 공간을 돌봄의 감각으로 채우는 것이다. 이는 마을을 절대시하거나 낭만화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끊임없이 되비추며 새로운 관계를 실험하는 장으로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다.

‘니땜시 산다’는 고백이 만드는 실천적 거점
행사 이튿날에는 매향비와 800년된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을 돌아보는 현장답사가 진행되었다. 매향은 바닷가 뻘밭에 나무를 묻어두고 수백년 후 침향이 된 나무와 함께 미륵불을 맞이하겠다는 조선시대의 종교적 의식이다. 여기에는 불안하고 궁핍한 현실을 넘어서고 싶다는 장삼이사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따스한 봄볕을 맞으며 매향비의 간절함과 마을을 굳게 지켜온 느티나무의 넉넉한 그늘을 바라보는 일은 다시 한 번 민초의 삶과 마을의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니땜시 산다’는 말은 투박하지만 절실한 고백이다. 고립된 개인이 타자와 연결되고 그 연결이 문화라는 형식을 입을 때, 단순 생존을 넘어 삶의 질을 담보하는 ‘윤기있는 생존’이 가능해진다. 이번 대회는 마을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 틈새에서 피어나는 연대의 가능성을 확인한 소중한 자리였다. 마을은 정체되어 있지 않다. 기획자와 활동가가 만나 부딪치고, 돌봄이라는 키워드로 삶의 자리를 다시 짓는 동안 마을은 진화한다. 문화도시 3.0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삶터의 바깥을 보며 성과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마을 골목 어딘가에서 ‘니땜시 산다’고 말하며 이웃의 손을 맞잡는 순간, 우리의 도시는 비로소 문화적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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