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26년 3월 23일
- 대담: 허경(철학자), 김재준(경제학자, 웹진문강 편집장)
BTS 신보에 75점 준 프랑스파 철학자 허경 등판!! 뇌가 섹시해지는 음악X철학 대담 레전드

허경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철학자로, 철학학교 혜윰을 이끌고 있다. 그는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 읽기』 등 저술과 번역·강독을 통해 푸코의 난해한 사유를 독자에게 꾸준히 소개해 왔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와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 ‘신이 죽은’ 시대의 내로남불』 같은 책을 통해 철학과 민주주의의 접점을 일상에서 잇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음악과 예술 전반에 대한 관심이 깊어, 팝과 록부터 클래식에서 국악, 월드뮤직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다루는 음악 강연을 진행하며, 음악을 철학적 사유의 텍스트로 활용하는 데 능숙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과 함께 〈친절한 금자씨〉에 대해 대화를 나눈 바 있다.
1. 프로그레시브 록의 유산과 ‘뮤지컬 박스’의 추억
김재준
허경 선생님은 철학자이시지만 음악에 대한 조예가 남다르시다고 들었습니다. 과거에 직접 음악 잡지를 만드셨던 경험도 있으시다고요.
허경
대단한 건 아닙니다만, 프랑스 유학 중이던 1999~2000년에 뜻이 맞는 후배 음악평론가들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록 전문지인 <뮤지컬 박스(Musical Box)>를 냈습니다. 1호는 핑크 플로이드, 2호는 제네시스와 피터 가브리엘을 특집으로 다뤘죠. 사실 3호로 크라프트베르크까지 준비를 마쳤는데, 다들 본업이 있다 보니 2호까지만 내고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쑥스럽지만 지금도 가끔 매니어들 사이에서 언급되는 좋은 잡지였다고 생각하는데요, 4호로 ‘더 클래시’ 기획을 위해 당시 파리에 공연을 왔던 클래시의 리더 조 스트러머와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김재준
영국 밴드 '르네상스(Renaissance)'를 들어보면 굉장히 고급스럽고 어떤 계급적인 정취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록과 클래식의 그 기묘한 접점이 참 훌륭하더군요.
허경
맞습니다. 르네상스는 1960년대 후반 야드버즈 출신의 두 멤버가 참여했던 그룹인데, 록과 클래식을 혼종적으로 결합한 선구적인 그룹 중의 하나였죠. 저는 1960년대 말 혹은 1970년대 초까지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아트 록 씬과 1950~70년대 초반의 미국 재즈 씬을 인류 음악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드문 순간 중 몇몇으로 봅니다. 마치 20세기 초 유럽에서 현대 미술 혹은 현대음악이 탄생할 때와 같은 맥락의 지적이면서도 역동적인 폭발력이 있었죠.
2. 철학적 민주주의 : “나를 만든 것은 팔 할이 음악이었다”
김재준
그런 지적 폭발력을 경험하셨기에 선생님의 사유 안에서 음악과 철학은 분리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철학의 언어가 닿지 못하는 심연에 음악이 먼저 가 닿는다고 느끼실 때가 있습니까?
허경
저는 질문의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저는 철학을 하기 훨씬 전인 중학교 시절이던 1977년, 산울림의 음악을 통해 ‘록의 세례’를 먼저 받았습니다. 본격적인 철학 공부는 7-8년이 지난 대학 2~3학년 때에야 시작했으니, 제 영혼의 뿌리에는 음악이 먼저 자리 잡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서정주 시인의 표현을 빌려, “나를 만든 것은 팔 할이 음악이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김재준
음악이 선생님의 사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허경
음악을 통해 '철학적 민주주의'를 배웠습니다. 음악에는 이른바 ‘객관적인’ 우열의 기준이 없으면서도 ‘깊이’의 차이는 분명 존재합니다. 클래식의 잣대로 메탈을 비판하거나, 재즈의 기준으로 팝을 폄하할 수 없죠. 장르들 사이에 존재론적 우열은 없습니다. 각 장르, 각 개인이 추구하는 고유의 방식 안에서 그 성취를 바라봐야 한다는 깨달음이 저를 민주주의자로 만들었습니다. '장르'라는 분류 체계는 레코드 회사나 기자들이 만든 ‘인위적인’ 분류체계로 일정한 도움이 되지만, 감상자들은 그저 ‘참고용’으로만 쓰면 됩니다. 장르라는 것 자체가 우리 머리의 바깥에 실제로 존재하는 무슨 객관적인 실재가 아니라, 이런저런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 관념의, 그러니까 머릿속의, ‘인위적인’ 분류 체계인 것이지요.
김재준
선생님은 음악을 굉장히 다양하고 ‘마구잡이’로 들으시는 편인 것 같은데, 그것 역시 편견 없는 사유를 위한 훈련이었을까요?
허경
옛날 단골 레코드점 중 하나였던 연대 앞 ‘향’ 음악사 사장님이 저를 이상하게 보셨어요. 도무지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음반들을 함께 사 가니까요. 90년대 <키노>나 <핫 뮤직> 같은 매체가 나오면서 이른바' 작가주의' 기준이 생기기 전, ‘가이드 없이’ 마구잡이로 음악을 들었던 경험이 저를 편견에 갇히지 않게 했습니다. 90년대에 저는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음악 취향이 근본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상태이니, 영향을 덜 받았지요. 더구나 <핫뮤직> 편집진은 저보다 세대가 아래인 분들이라 그냥 ‘이렇게 보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지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이론도 아마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은 동시에 우리를 지배한다”라는 말은 참으로 옳은 지적일 것입니다. 지금은, 담론이 형성되기 전에 ‘몸’으로 먼저 음악을 받아들인 것이 나의 가장 큰 자산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3. BTS와 ‘아리랑’, 진정성 혹은 마케팅
김재준
방탄소년단(BTS)이 2013년 힙합 그룹으로 시작해 지금은 팝의 영역으로 깊이 흡수되었다는 평이 있습니다. 이 '아리랑'이라는 소재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허경
저는 이것을 그들이 말하는 '백 투 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s)', 즉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로 봅니다. 군 복무 등으로 인한 3~4년의 강제적 공백기는, 가량 비유를 들자면, 사상가나 운동가들이 감옥에서 자신을 돌아보듯, 실제로 정신 없이 달려온 자신들의 과거를 복기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상업적인 컴백 멘트의 측면도 있겠지만, 저는 그들 안에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고 싶어 하는 마음, 또는 진정성 역시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가 나머지 하나를 반드시 배제하지는 않으니까요.
김재준
그들이 스스로를 여전히 "한국에서 온 촌놈들"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맥락일까요?
허경
그렇다고 봅니다. 미국 주류 음악계라는 거대한 타운에서 자신들이 '뉴 키즈(New Kids)'임을 잊지 않는 객관적인 인식입니다. '아리랑'이라는 소재의 채용을 두고
민족주의를 자본주의적으로 소비한다라든가, 이른바 제가 만든 용어로 'K-제국주의적’ 관심이라는 비판도 가능하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국악과 K-팝의 결합이라는, 외국 그룹은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그들만의 독보적인 무기를 잘 활용한 것입니다. 김재준 선생님이 지적하셨듯이, 한국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두 가지는 국악과 K-팝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이른바 ‘장사’ 포인트로 봐도 아주 영리하고 훌륭한 전략이라고 봅니다.
4. 리스펙트(Respect)와 세계적인 인정(Recognition)
김재준
한국 문화가 이토록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우리 내면의 어떤 강한 동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를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허경
아마도 1990년대 말 《뉴스위크(Newsweek)》지 아시아판이었던 것 같은데요, 당시 떠오르는 대한민국을 다루며 썼던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요, 한국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바로 '리스펙트(Respect)'라고요. '리스펙트'를 일본인들은 흔히 '존경'으로 번역하지만, 저는 이를 ‘존중’, 곧 헤겔이 말하는 '인정(Recognition) 투쟁의 맥락에서 읽을 가장 풍부하고 생산적인 독해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대원군 이후의 쇄국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비극적인 6.25 전쟁과 분단 등을 거치며 국제 사회에서 제대로 된 '인정'을 받아본 적이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미국 드라마<M.A.S.H.>류의 남들이 재단해서 보여준 오리엔탈리즘의 시선, 폄하와 오독의 시선만이 존재했었죠.
김재준
그 인정에 대한 목마름이 거대한 에너지로 폭발한 셈이군요.
허경
맞습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신동아>에 쓴 글의 제목이 <민족적 오기와 깡>이었습니다. 참으로 적실한 분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린 이제 더 이상 못살지 않는다"라는 긍정적으로 보면, 기개와 호연지기라고도 할 수 있을 만한 어떤 태도입니다. 니체가 말했듯, 때로 열등감과 죄책감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동력이기도 합니다. '억하심정'과 ‘한풀이'에 가까운 에너지, 요즘 말로 ‘국뽕’을 향한 의지로 나타나는 어떤 에너지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동력 중 하나라고 봅니다.
김재준
하지만 그런 성취가 자칫 상업적인 국수주의로 흐를 우려도 있지 않을까요?
허경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70년대 말 백낙청 선생이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고 했고, 아마도 그 이후인 듯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인용한 마틴 스코세이지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도 있죠. 저는 여기서 1999년 한발 더 나아가 "가장 세계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 나아가 “가장 세계적인 것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내가 레드 제플린에 꽂혔으면, 그냥 그런 음악을 하면 됩니다. 그러다보면 신중현이나 송창식 같은 ‘독창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음악이 결과적으로 나오는 것이지요.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꼭 국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개인이 가장 자기답게 세계로 나갔을 때, 그것이 곧 가장 한국적인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실은 굳이 한국적인 것을 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됩니다. 힙합이든 국악이든 엔카든, 오직 ‘제대로’ 잘 하는가만이 문제이지요. 개인적 정체성과 국가 아이덴티티를 일치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5.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한국성 : “정복하면 정복당한다”
김재준
BTS가 한국적 정체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번 프로젝트의 수록곡 가사 대부분을 영어로 채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어로 노래하지 않는 한국성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허경
매우 예리한 질문입니다. 사실 "한국어로 노래하지 않는 한국성이 가능한가"라는 문제는 적어도 1990년대 중반경부터 음악 비평계의 오랜 화두였습니다. 당시에는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후렴구 정도만 영어로 쓰자는 전략이 주를 이뤘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말처럼, "모든 제국주의는 문화에서 시작해서 문화에서 끝납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워서 쓰는 것만이 아니라, 역으로 전 세계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시대가 된 것이죠. 영어 가사는 일종의 매개체일 뿐, 그 안에 담긴 문화적 에너지는 이미 국경을 넘었습니다. 이 역시 앞의 질문처럼, 좁은 의미의 ‘우리것’에 매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것’이라는 것 자체도 실은 늘 변화해온 결과이고, 앞으로도 늘 변화해 가겠지요. 맞춤법은 오늘 사용의 편의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규정해두는 것이지, 그것이 언중이 발생시키는 현재 혹은 미래의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자 해봐야, 결국 맞춤법만이 도태될 뿐입니다. 관계적 존재인 ‘나’를 깊이 탐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나를 형성한 시간적 공간적 장을 형성한 ‘우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지요.
김재준
BTS가 미국 흑인 음악의 언어를 깊이 흡수했다는 점에서 문화적 혼종성(Hybridity)과 권력의 불균형 문제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누가 누구의 것을 가져가느냐는 푸코적 관점의 비판이죠.
허경
니체는 "정복하면 정복당한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프랑스 유학 시절 느낀 점도 같습니다. 프랑스가 북아프리카를 점령했지만, 이들 과거 피식민지의 인구는 본토 인구의 10%가량이지만, 지금 프랑스의 문화는 이들 없이 설명도 존립도 불가능합니다(영국을 통해 세계로 펼쳐지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례처럼, 적어도 초기에는 식민본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월드뮤직의 분석도 바로 이런 관점에서 다시 보아야 합니다). 문화는 실체적으로 누군가 또는 어떤 특정 국가가 묶어놓을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미국 힙합의 기원이 뉴욕 할렘에 있을지언정, 그 소유권을 영원히 주장할 수는 없죠. 이탈리아인이 하와이안 피자에 화를 낼 수는 있지만, 결국 그 변주가 피자라는 문화를 전 세계에 퍼뜨린 것과 같습니다. 에미넴이 흑인 랩 음악의 왕자가 된 것처럼, BTS의 힙합 역시 실체적인 기원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6. 제도적 지원과 비평의 거리 : “음악성 높은 앨범은 대중성도 높다”
김재준
미국 프로듀서 기용이나 사회적 논란이 있는 창작자와의 협업에 대한 국내의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허경
한국 음악은 한국인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의도는 알겠지만, 현실에 맞지도 않고, 위험한 국수주의이자 폐쇄주의입니다. 다만, 이 경우, 프로듀서들의 욱일기 논란 같은 '교양 없는' 행태에 대해서는 당연히 비판해야 하지만, 사실상 협업이라는 사실을 비난할 수는 있을지언정, 협업 자체가 문제가 있으니 하면 안 된다는 식의 논의는 상당히 폐쇄적인 논의이기도 합니다. 마치 어떤 정치인이 결함이 있다 해도, 비판하거나 안 찍으면 되는 것이지, 선거 출마 자격 자체를 법으로 박탈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일부 프로듀서들의 과거 욱일기 논란은 비판 받아 마땅하고요.
김재준
정부의 예술 지원 정책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습니다. K-팝은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했는데, 국가의 역할은 어디까지여야 할까요?
허경
정부의 지원은 재정적 지원과 제도적(정책적) 지원으로 나뉩니다. 하이브나 SM 같은 대형 기획사에는 정책적·법적 지원에 중점을 두고 제도적 지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맞고, 자본주의 시장에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도태되기 쉬운 기초 예술 및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재정 및 제도의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는 단기 실적 위주로 되어 있어, 이 우선순위가 뒤바뀌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이 전은 정책 수립의 기본 원칙으로서 반드시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더하여, 문화 관련 법규와 제도를 수립, 집행하는 정치인과 행정 공무원이 전문성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으니, 이에 대해서도 제도적 보완을 통해 긴 안목으로 고쳐나가야 합니다.
김재준
흥미로운 점은 해외 평단(BBC, CNN, 잡지 <롤링 스톤> 등)의 호평에 비해 국내 비평이 유독 박하다는 점입니다. 서구 팝 공장의 산물이라는 비판도 있고요.
허경
원래 유명해지면 온갖 담론과 황당한 루머까지 따라붙기 마련입니다. 서태지 때도 사망설, 심지어 임신설까지 나왔었죠. 이는 기본적으로 유명세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문제는 비평이 있을 때가 아니라, 비평이 없을 때이니까요. 한편, 오히려 음악만을 들을 뿐, 담론으로부터 ‘차단된’ 외국 사람들이 아티스트의 개인사나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국내적 맥락을 모르고 오로지 '음악'으로만 접근하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보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영화<보헤미안 랩소디>가 크게 흥행한 것도 - 영국에서 수십 년 동안 황색 언론을 도배했던 프레디 머큐리의 사생활보다 - 음반을 통한 감상만이 가능했다는 사실로 인해, ‘음악 자체’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BTS의 이번 행보 역시 4년만에 돌아와 '오늘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길어도 3개월 단위로 무섭게 돌아가는 대중음악 씬에서3년 반 이상의 공백기를 거치고도, 저라면 이번 음반에 75점 정도를 주고 싶은데, 첫 컴백 음반에서 이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주었다면, 앞으로 멤버들이 다시 합을 맞추게 될 이후의 앨범이 음악적으로 더 나으리라는 전망을 가능케 합니다(개인적으로 BTS의 음악이 제 취향과는 거리가 멀지만, 여하튼 그렇게 봅니다).
7. 집합적 예술의 완성인가, 자아의 해체인가
김재준
이번 앨범에서 일곱 멤버의 개성 있는 목소리가 하나로 뭉개져 들린다는 평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일종의 집합적 예술의 완성인지, 아니면 시스템에 의한 자아의 해체인지요.
허경
그것은 팬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서양인이 한국 축구선수들 얼굴을 구별 못 하는 것과 비슷하죠. 비틀즈도 초창기에는 한 명의 보컬처럼 들렸지만, 앙상블이 10년 넘게 맞춰지면, 자연스럽게 일정한 정조가 생겨나지요. 비틀스를 모르는 사람이 음악만 듣는다면 보컬이 둘 또는 셋 심지어 넷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뭉개지는 것이 아니라 10년 차 그룹이 보여주는 '앙상블’의 형성 과정으로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김재준
재즈 아티스트 존 콜트레인이 후기로 갈수록 목소리가 음악 안에서 사라지며 불협화음으로 나아갔던 것과도 연결해 볼 수 있을까요?
허경
콜트레인처럼 극단적인 불협화음으로 나아간 것은 아니지만, BTS 역시 원초적인 공격성으로 돌아가 실험적인 모드를 도입하려는 흔적이 보입니다. 콜트레인과 BTS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가령 콜트레인의 대중성을 소수 매니어의 대중성, BTS의 대중성을 대중 대중성(Mass popularity)으로 부른다면, BTS는 후자를 지향하면서도, 이번 앨범에서는 (과거 대한민국 출신 뮤지션들의 ‘고질적’ 흠이었던, 적어도 4~5년은 늦은 듯한 ‘올드한’ 사운드가 아닌) 새로운 소리, 그리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은, 나름의 ‘참신한’ 소리를 만들어냈다고 봅니다. 음악적 혁신은 대중성과 반드시 비례하거나 반비례하지 않습니다. 상관 관계가 없지요. 음악성이 높아도 비틀스나 핑크 플로이드 마이클 잭슨처럼 대중성이 있을 수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중성이 높다고 해서, 음악성이 반드시 높거나 낮지도 않지요. 이들은 독립된 사건이지만, 제 경험상 음악성이 있은 앨범은 결국, 다수의 대중이든 소수의 매니아이든, 그 가치를 알아 보아주는, 많든 적든, ‘대중’이 있기 마련입니다.
8. 전성기의 위기 : 꽃은 피었으나 뿌리가 없다
김재준
대중문화의 성취에 비해 이를 평가하는 우리의 담론이나 평론의 언어는 여전히 빈약해 보입니다. 여전히 서구의 언어로 우리를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허경
정확한 지적입니다. 담론과 생각이 예술적 성취를 받쳐주지 못하면, 아티스트는 더 크게 성장할 수 없습니다. 헤겔의 양질전화 개념이 말하듯, 일정한 기초 조건이 세팅된 ‘장’이 형성된 후에, 시간이 흐르고 인프라가 쌓이면 방외인의 눈에는 '괴물'이나 ‘천재’처럼 보이는 존재가 나오는 것이지요. 지금은 그 인프라가 매우 부실합니다. 극소수를 제외한다면, 영화든 음악이든, 대한민국의 예술은 기본적으로 착취와 강자 독식구조로 작동하고 있지요. 이 부분에 대한 서구 언론의 비판은, 그들의 뿌리 깊은 오리엔탈리즘적 ‘폄하 담론’을 감안하더라도, 새겨들을 구석이 있지요. 모든 것은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니까요. 이런 부분이 예술가 자신들에게서도 나와야 하지만, 이는 가령 어떤 철학자가 직접 세계 정상급의 음악과 미술을 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과도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전문가 집단, 곧 광의의 인문학자들로부터 협업 또는 상호 작용의 형태로 ‘제공’되어야 하지요. 인문학적 지원이 곧 예술 진흥 정책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김재준
저는 지금의 상황을 "꽃은 피었으나 뿌리가 없다"고 은유합니다. 뿌리를 살리지 못하면 이 화려한 꽃도 곧 지고 말 것입니다.
허경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지금은 한국 문화의 전성기이지만, 전성기라는 말은 곧 지기 시작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중국반환이라는 상황이 결정적이지만, 한때 찬란했지만 자기 복제를 거듭하다 무너졌던 홍콩 영화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신자유주의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구조 개혁’이 필수적입니다. 기득권 시스템이 저항하겠지만,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비전을 인문학자와 철학자들이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니까요.
김재준
김구 선생이 꿈꿨던 '문화강국'의 염원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해 보입니다.
허경
맞습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가졌던 문화적 독립 의지와 김구 선생이 꿈꿨던 '높은 문화의 힘'을 다시금 되새겨야 합니다. 한국은 식민지 경험 없이 자생적으로 성장을 거둔 특이하고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꽃의 화려함을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 그 꽃을 지탱할 지적인 뿌리와 구조적 인프라를 판갈이해야 할 때입니다.
김재준
오늘 대담을 통해 K-컬처가 나아가야 할 지적인 좌표를 확인한 것 같습니다. 긴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김재준 편집장
국민대 명예교수
전) 한국예술경영학회 2대 회장
전) 한국문화재정학회 회장
전) 국민대 박물관장, 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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