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중 | 디자인학 박사, 웹진문강 편집위원

경계를 넘는 사람들
1950년 무렵의 도쿄. 예술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하던 학생 하나가 신생 전자회사를 찾아가 테이프리코더의 음질을 조목조목 따졌다. 발레리나가 거울 앞에서 몸을 다듬듯 음악가는 녹음기로 제 소리를 되돌려 들으며 연습해야 하는데 이 기계의 소리는 그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었다. 회사는 건방진 학생을 내쫓는 대신 자문역으로 앉혔다. 학생의 이름은 오가 노리오, 회사는 훗날의 소니다. 경영자가 된 그는 CD 규격을 놓고 필립스와 협상하면서 지름 12센티미터에 74분 42초를 끝까지 고집했다. 근거는 공학이 아니었다. 오페라 공연 도중에 막을 내리지 않듯 베토벤 9번 교향곡은 끊기지 않고 한 장에 담겨야 한다는 것. 세계 표준이 된 CD의 시간은 엔지니어의 계산이 아니라 음악가의 귀가 정한 셈이다.
글로벌 트렌드를 조사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붙드는 것은 한 분야의 정점에 오른 사람들이 의외의 전공에서 출발한 경우다. 투자의 세계가 대표적이다. 1992년 영국 중앙은행과의 환율 전쟁에서 이긴 조지 소로스는 런던정경대에서 칼 포퍼의 철학을 만난 사람이다. 페이팔을 만들고 페이스북의 첫 외부 투자자가 된 피터 틸은 스탠퍼드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한때 월가에서 가장 두려운 이름이었던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컨은 프린스턴 철학과에서 경험주의를 다룬 논문을 썼고, 15년 연속 S&P500 지수를 이겨 전설이 된 펀드매니저 빌 밀러는 존스홉킨스 철학 박사과정을 밟았으며, 링크드인을 창업한 리드 호프먼은 옥스퍼드에서 철학 석사를 마쳤다. 취미로 철학책을 뒤적인 아마추어들이 아니다. 시장을 실제로 움직여 본 거물들이 하나같이 철학의 훈련을 통과했다.
경영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에어비앤비를 세운 브라이언 체스키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디자이너 출신이다. 그는 "디자인은 겉모습이 아니라 작동 방식"이라는 학교의 가르침을 낯선 사람들끼리 서로의 집을 빌리는 플랫폼의 신뢰 설계에 옮겨 심었다. 아예 두 세계를 겸하는 사람도 있다. 화가 무라카미 다카시는 협력사를 포함해 350명 넘게 일하는 회사 카이카이키키의 CEO로서 작품 판매와 작가 매니지먼트, 전시 기획을 사업으로 경영하는 현역 작가다. 체스키의 모교 총장을 지낸 존 마에다는 MIT 미디어랩의 예술가에서 디자인스쿨의 경영자로, 다시 마이크로소프트의 디자인·AI 부문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예술과 경영 사이를 왕복해 왔다.
철학이 주가를 예측하는 기술이라서 투자자들이 철학과로 갔을 리는 없다. 철학은 무엇이 참인지 가르치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근거로 참이라 믿는지를 묻는 학문이다. 주가는 기업의 객관적 가치만 반영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의 기대와 공포, 그리고 다른 투자자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 관한 믿음까지 반영한다. 그러니 숫자를 읽는 사람은 숫자를 만들어내는 집단의 신념까지 읽어야 한다. 훌륭한 투자자는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틀렸음을 남보다 빨리 알아채는 사람이다. 철학은 바로 그 훈련이었다.
여기까지는 제법 알려진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한번 뒤집으면 낯선 질문이 하나 나온다. 돈을 다루는 사람들이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것을 공부하러 철학과에 갔다면, 그 반대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계산되지 않는 가치를 다루는 사람들, 그러니까 예술의 세계에는 무엇이 들어갔을까. 이를테면 경제학을 공부한 미술관장은 있는가. 있다면 그는 미술관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경제학을 공부한 관장들

있다. 그것도 현대 미술관사에서 가장 성공적이라 꼽히는 자리에 있다. 1997년 개관 이후 '빌바오 효과'라는 말을 만들어낸 바로 그 미술관이다.
구겐하임 빌바오의 창립관장 후안 이그나시오 비다르테는 데우스토대학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하고 비스카이아 지방정부에서 조세·재정정책을 책임지던 관료였다. 그가 1996년부터 2025년까지 30년 가까이 이끈 빌바오 구겐하임은 자체재원 비중 70% 이상, 2023년 한 해 방문객 약 130만 명, 경제효과 약 7억 6천만 유로라는 수치를 보고했다. 물론 이 성과를 그의 전공 하나로 설명하면 곤란하다. 프랭크 게리의 건축과 바스크 정부의 인프라 투자, 구겐하임이라는 브랜드가 함께 만든 결과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남는다. 빌바오는 미술관 건립 사업이 아니라 쇠퇴한 공업도시 전체의 전환 프로젝트였고, 그 지휘석에 미술사가가 아니라 공공재정 전문가가 앉았다는 것이다.
이 계보는 지금도 이어지는 중이다. 벨기에 왕립미술관은 2024년 7월 킴 오스털링크를 총관장으로 맞았다. 솔베이 브뤼셀 경제경영대학원의 재무학 교수로, 경제·경영학 박사이면서 미술사·고고학 학위를 함께 가진 인물이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두 정체성이 한 사람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금융시장만 연구한 학자가 아니라 미술시장과 예술품 가격, 전쟁과 문화자산의 관계를 연구해 왔다. 예술적 가치와 시장가격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장이 작품의 유통과 기관의 재정에 어떤 힘을 미치는지 분석하는 사람. 유럽의 국립미술관이 어떤 관장을 원하기 시작했는지 보여주는 임명이다.
경제학이 미술관으로 들어오는 경로가 강의실만은 아니다. 싱가포르의 유진 탄은 런던대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뒤 미술사 박사가 되었고, 경제개발청에서 예술지구 조성을 총괄하다 2013년 국립미술관 관장이 되었으며 지금은 국립미술관과 싱가포르미술관을 묶은 통합 CEO다. 그의 경제학은 논문이 아니라 산업정책과 장소 만들기의 실무에서 작동했다. 개별 전시가 아니라 도시의 장기적인 문화적 위치를 설계하는 능력이다.
도쿄의 난조 후미오는 이 계보에서 가장 극적인 전향자다. 1972년 게이오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그는 같은 대학 문학부에 다시 들어가 미학과 예술학을 공부했고, 국제 비엔날레를 넘나드는 큐레이터로 이름을 얻은 뒤 2006년부터 13년간 모리미술관 관장을 지냈다. 미술관과 전망대와 상업시설이 한 건물에 뒤섞인 롯폰기힐스의 꼭대기에서, 그의 경제학은 작품을 고르는 눈이 아니라 미술관이 도시의 구조 안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를 읽는 배경지식으로 일했다. 미국의 브라이언 페리소는 경제학 학사 위에 예술경영 석사와 미술사 석사를 차례로 쌓았고, 포틀랜드 미술관을 20년 가까이 이끈 뒤 2025년 12월 댈러스 미술관 관장으로 옮겼다.
오해는 말자. 이들은 다수가 아니다. 엄격하게 확인하면 경제학 배경의 주요 미술관장은 세계를 통틀어 일곱 명 남짓이고, 관장의 절대다수는 여전히 미술사가와 큐레이터다. '경제학자 관장의 시대가 왔다'고 쓰면 과장이다. 그러나 소수라는 사실이 이들을 사소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이 소수는 현대 미술관이 새로 요구하기 시작한 역량이 무엇인지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표본이다. 미술관은 이제 작품을 골라 벽에 거는 기관만이 아니다. 수백 명의 전문인력과 대규모 예산을 배분하고, 정부·기업·대학·도시를 연결하고, 시장가격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를 사회에 설명해야 하는 복합기관이다.
페리소의 포틀랜드 시절이 좋은 예다. 그는 재임 중 미술관 기금을 4천만 달러 늘리고 700만 달러의 부채를 지웠으며, 17세 이하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영구히 무료로 입장하도록 별도의 기금을 설계했다. 여기서 재정은 예술의 반대말이 아니다. 안정된 기금이 있어야 큐레이터를 장기 고용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경기변동과 후원자의 취향으로부터 지켜낸다. 재정은 예술을 단기 성과에 저당 잡히지 않게 하는 완충장치다.
미술관에 상주하는 경제학자
그리고 최근, 관장 임명보다 한층 대담한 실험이 나타났다.
2026년 4월 런던의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를 '상주 경제학자(Economist in Residence)'로 위촉했다. 『기업가형 국가』로 알려진 UCL 교수다. 임기는 3년이고, 관장 길레인 타와드로스가 직접 발의했다. 화이트채플은 이 자리가 갤러리 역사상 최초라고 밝혔고, 한 미술 전문지는 어쩌면 미술계 전체에서도 최초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작가가 상주하는 레지던시는 미술관 세계에서 흔한 제도다. 경제학자가 상주하는 미술관은 이제 막 하나 생겼다.
이 자리가 하는 일의 목록은 더 뜻밖이다. 마추카토는 작품을 고르지 않는다. 전시에 의결권도 없다. 대신 관장과 함께 갤러리의 전략계획을 자문하고, 문화기관의 재원과 거버넌스 모델을 연구하며, 갤러리를 문화예술 경제학의 실험장으로 쓴다. 취임 직후 열린 공개 행사의 제목은 '문화의 가치(The Value of Culture)'였다. 갤러리가 경제학자에게 내준 것은 권력이 아니라 질문할 자리다. 이 미술관은 무엇으로 정당화되고, 무엇으로 지속되는가.
선례가 아주 없지는 않다. 2012년 게임회사 밸브는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를 같은 직함으로 영입해 게임 속 가상경제를 분석하게 했다. 훗날 그리스 재무장관이 되는 인물이 게임 세계의 환율과 무역수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던 셈이다. 주목할 대목은 이 직함의 희소성이다. 금융회사와 정부기관, 그리고 대학의 교수직을 제외하면 '상주 경제학자'라는 정확한 직함이 공식 확인된 사례는 지금까지 이 둘 정도다. 구글과 아마존이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두고 일상적 의사결정에 경제학을 내장한 지 이미 오래인데, 문화기관은 이제 첫발을 뗐다. 희소함 자체가 뉴스다.
경계하는 목소리가 먼저 들릴 것이다. 경제학자가 미술관에 들어오면 예술이 관광상품이 되고 전시가 수익모델이 되는 것 아닌가. 근거 없는 걱정이 아니다. 1988년부터 20년간 구겐하임 재단을 이끈 토머스 크렌스는 정치경제학 훈련을 받은 확장 전략가였고, 그의 글로벌 프랜차이즈 모델은 빌바오라는 성공과 미술관의 브랜드화라는 뜨거운 논쟁을 동시에 남겼다. 경제학이 효율과 성장의 언어로만 들어올 때 예술이 도시마케팅의 장식으로 축소될 위험은 실재한다.
그런데 마추카토의 화이트채플행은 정확히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그의 경제학은 문화를 시장실패의 보정 대상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만드는 공공가치로 다시 정의하자고 제안한다. 현대 문화경제학은 입장권 매출로 잡히지 않는 가치를 다룬다. 한 번도 방문하지 않는 시민이 미술관의 존재 자체에서 얻는 가치, 미래 세대가 물려받을 유산의 가치 같은 것들이다. 요컨대 쟁점은 경제학을 들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경제학을 들일 것인가다. 관람객 수만 세는 경제학은 미술관을 빈곤하게 만들지만, 가격 없는 가치를 계산에 넣는 경제학은 미술관의 공공성을 방어하는 무기가 된다. 예술을 돈으로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돈으로 표현되지 않는 가치를 제도의 언어로 번역하는 기술. 미술관이 필요로 하는 경제학은 그쪽이다.
미술관의 미래
이 낯선 실험들이 왜 지금 나타나는지 이해하려면 미술관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세계의 미술관은 소장과 전시의 기관에서 다른 무엇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카를스루에의 ZKM은 1989년 설립 때부터 스스로를 '미술관 그 이상의 기관'이라 부르며 연구와 기술개발과 예술생산을 한 지붕 아래 두었다. 로스앤젤레스의 LACMA는 미술관 안에 예술-기술 랩을 두고 기술기업들과 프로토타입을 만드는데, 이 랩의 뿌리는 1967년 작가들을 철강회사와 전자기업의 현장에 파견하던 프로그램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트리아 린츠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1979년부터 미디어아트 축제와 국제 공모상, 그리고 기업과 협업하는 미래연구소를 한 기관 안에서 운영하며 예술가·과학자·기업을 40년 넘게 협업시켜 왔고, 뉴욕의 뉴뮤지엄은 아예 미술관이 주도하는 창업 인큐베이터를 운영해 700명이 넘는 창작자와 700개 가까운 일자리를 길러냈다. 이들은 작품의 집이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소장과 보존과 전시라는 오래된 심장 위에 연구소와 실험실과 공론장의 기능을 쌓아 올렸을 뿐이다.
AI는 이 이동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 생성형 AI가 이미지를 쏟아내는 시대에 미술관은 인간의 창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오가는 거의 유일한 공적 장소가 된다. 동시에 아주 실무적인 난제들이 밀려든다. 소프트웨어와 함께 태어난 미디어아트는 그 소프트웨어가 단종되는 순간 죽기 시작한다. 수십 년 전 비디오테이프로 제작된 작품은 재생 장비가 사라지기 전에 옮겨 담아야 하고, 데이터로 존재하는 작품은 수집과 보존과 저작권의 규칙을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 미디어 보존가, 큐레토리얼 테크놀로지스트, 디지털 아키비스트 같은 낯선 직함들이 미술관 조직도에 올라오기 시작한 이유다. 수장고의 디지털 트윈을 실험하고 소장품 데이터를 연구자에게 열어 놓는 미술관도 늘고 있다.
그래서 미래의 미술관에는 세 개의 언어가 필요해진다. 첫째는 물론 안목의 언어다. 어떤 작품을 수집하고 어떤 서사로 전시할지 판단하는 미술사적 훈련 없이 미술관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기둥이다. 둘째는 기술의 언어다. 작품이 만들어지고 보존되고 유통되는 조건이 기술로 짜이는 시대에,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미술관은 자기 소장품의 미래조차 계획하기 어렵다. 셋째가 경제의 언어다. 이 모든 기능을 겸하는 기관은 그만큼 복잡한 재원과 파트너십과 평가의 구조를 요구한다. 하나의 숫자로 접혀 들어가던 성과를 교육과 접근성과 도시 파급이라는 여러 겹의 지표로 다시 펴는 일, 단년도 예산을 다년도 구조로 바꾸는 설계, 기업과의 협업에서 후원이 전시를 침범하지 않도록 경계선을 긋는 계약의 기술. 하나같이 안목의 언어만으로는 다루기 어렵고, 경영의 언어만으로는 정당화되지 않는 일들이다.

세 언어를 한 사람이 모두 가질 필요는 없다. 화이트채플처럼 조직의 가장자리에 경제학자의 책상 하나를 들이는 것으로 시작할 수도 있고, 오스털링크처럼 두 언어가 한 사람 안에서 만나는 경우도 있다. 확실한 것은 세 언어가 만나는 자리가 미래의 미술관 어딘가에 반드시 설계되어야 한다는 사실이고, 세계의 미술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 자리를 만드는 실험에 이미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그 미래의 미술관을 잠시 그려 본다. 전시실 옆에는 예술가와 엔지니어가 함께 쓰는 랩이 있고, 보존실에는 물감과 용제 곁에 서버와 에뮬레이터가 놓여 있다. 레지던시 명단에는 작가와 나란히 과학자의 이름이 오르고, 연말이면 관람객 수와 함께 이 미술관이 도시와 시민에게 만들어낸 공공가치를 따진 보고서가 나온다. 수장고의 데이터는 연구자들에게 열려 있고, 어린이는 입장료를 모른 채 자란다. 전시의 서사는 여전히 미술사가 쓰지만, 그 서사가 십 년 뒤에도 계속되도록 만드는 설계는 다른 언어들이 맡는다.
1950년의 도쿄로 돌아가 보자. 음질을 따지러 온 성악도에게 회사가 처음 내준 것은 사장실이 아니라 자문역의 자리였다. 그리고 30년 뒤 그는 세계가 음악을 듣는 시간의 표준을 정했고, 회사의 사장까지 올랐다. 화이트채플이 경제학자에게 내준 것도 아직은 상주자의 책상 하나다. 그 책상에서 무엇이 시작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투자가는 가격 뒤의 믿음을 읽으려 철학으로 갔고, 미술관은 가치가 살아남을 조건을 설계하려 경제학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중이다. 미술관의 다음 표준은 어쩌면 지금 그 책상 위에서 그려지고 있다.

장영중 편집위원
주식회사 비전고 대표
전) 디자인단체 총연합회 사무총장
전) 국민대 경영대학 전임강사
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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