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그것도 현대 미술관사에서 가장 성공적이라 꼽히는 자리에 있다. 1997년 개관 이후 '빌바오 효과'라는 말을 만들어낸 바로 그 미술관이다.
구겐하임 빌바오의 창립관장 후안 이그나시오 비다르테는 데우스토대학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하고 비스카이아 지방정부에서 조세·재정정책을 책임지던 관료였다. 그가 1996년부터 2025년까지 30년 가까이 이끈 빌바오 구겐하임은 자체재원 비중 70% 이상, 2023년 한 해 방문객 약 130만 명, 경제효과 약 7억 6천만 유로라는 수치를 보고했다. 물론 이 성과를 그의 전공 하나로 설명하면 곤란하다. 프랭크 게리의 건축과 바스크 정부의 인프라 투자, 구겐하임이라는 브랜드가 함께 만든 결과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남는다. 빌바오는 미술관 건립 사업이 아니라 쇠퇴한 공업도시 전체의 전환 프로젝트였고, 그 지휘석에 미술사가가 아니라 공공재정 전문가가 앉았다는 것이다.
이 계보는 지금도 이어지는 중이다. 벨기에 왕립미술관은 2024년 7월 킴 오스털링크를 총관장으로 맞았다. 솔베이 브뤼셀 경제경영대학원의 재무학 교수로, 경제·경영학 박사이면서 미술사·고고학 학위를 함께 가진 인물이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두 정체성이 한 사람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금융시장만 연구한 학자가 아니라 미술시장과 예술품 가격, 전쟁과 문화자산의 관계를 연구해 왔다. 예술적 가치와 시장가격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장이 작품의 유통과 기관의 재정에 어떤 힘을 미치는지 분석하는 사람. 유럽의 국립미술관이 어떤 관장을 원하기 시작했는지 보여주는 임명이다.
경제학이 미술관으로 들어오는 경로가 강의실만은 아니다. 싱가포르의 유진 탄은 런던대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뒤 미술사 박사가 되었고, 경제개발청에서 예술지구 조성을 총괄하다 2013년 국립미술관 관장이 되었으며 지금은 국립미술관과 싱가포르미술관을 묶은 통합 CEO다. 그의 경제학은 논문이 아니라 산업정책과 장소 만들기의 실무에서 작동했다. 개별 전시가 아니라 도시의 장기적인 문화적 위치를 설계하는 능력이다. 
도쿄의 난조 후미오는 이 계보에서 가장 극적인 전향자다. 1972년 게이오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그는 같은 대학 문학부에 다시 들어가 미학과 예술학을 공부했고, 국제 비엔날레를 넘나드는 큐레이터로 이름을 얻은 뒤 2006년부터 13년간 모리미술관 관장을 지냈다. 미술관과 전망대와 상업시설이 한 건물에 뒤섞인 롯폰기힐스의 꼭대기에서, 그의 경제학은 작품을 고르는 눈이 아니라 미술관이 도시의 구조 안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를 읽는 배경지식으로 일했다. 미국의 브라이언 페리소는 경제학 학사 위에 예술경영 석사와 미술사 석사를 차례로 쌓았고, 포틀랜드 미술관을 20년 가까이 이끈 뒤 2025년 12월 댈러스 미술관 관장으로 옮겼다.
오해는 말자. 이들은 다수가 아니다. 엄격하게 확인하면 경제학 배경의 주요 미술관장은 세계를 통틀어 일곱 명 남짓이고, 관장의 절대다수는 여전히 미술사가와 큐레이터다. '경제학자 관장의 시대가 왔다'고 쓰면 과장이다. 그러나 소수라는 사실이 이들을 사소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이 소수는 현대 미술관이 새로 요구하기 시작한 역량이 무엇인지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표본이다. 미술관은 이제 작품을 골라 벽에 거는 기관만이 아니다. 수백 명의 전문인력과 대규모 예산을 배분하고, 정부·기업·대학·도시를 연결하고, 시장가격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를 사회에 설명해야 하는 복합기관이다.
페리소의 포틀랜드 시절이 좋은 예다. 그는 재임 중 미술관 기금을 4천만 달러 늘리고 700만 달러의 부채를 지웠으며, 17세 이하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영구히 무료로 입장하도록 별도의 기금을 설계했다. 여기서 재정은 예술의 반대말이 아니다. 안정된 기금이 있어야 큐레이터를 장기 고용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경기변동과 후원자의 취향으로부터 지켜낸다. 재정은 예술을 단기 성과에 저당 잡히지 않게 하는 완충장치다.

장영중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