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26년 3월 30일
- 장소 : 전북 군산 황석영 작가 자택
- 대담 : 김재준(웹진문강 편집장), 임철빈(사무총장)
황석영 작가 “이제 우리가 서구 철학을 다시 쓸 차례.”

글로벌 사우스에서 조선 미학까지, 군산에서 들은 한국 문학과 세계문명의 구상
군산의 집에서 만난 황석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큰 호흡으로 말했다. 글로벌 사우스, 제3세계 문학 연대, K-문명, 민담적 리얼리즘, 판소리, 씻김굿, 여향. 대화는 계속 확장됐지만 이상하게도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한국 문학의 힘을 말하면서도 곧바로 세계 질서를 말했고, 조선 미학을 말하면서도 문화 전략을 말했다. 문학과 역사, 감정과 문명, 지역과 세계가 그의 말 속에서는 한 덩어리로 움직였다.
임철빈
황석영 선생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웹진문강의 창간 인터뷰라 더 뜻깊습니다. 오늘은 김재준 교수님이 중심이 되어 질문을 드리고, 저와 김정선 위원도 중간중간 궁금한 점을 여쭙겠습니다.
김재준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1. 한국 문학의 스케일과 서사의 힘
김재준
선생님의 거시적인 시야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난주 선생님의 신작 『할매』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 특히 북방에서 날아온 새가 죽어 팽나무가 태어나는 서사는 요한복음만큼이나 힘이 있고 스케일이 크다고 느꼈습니다. 어떻게 보면 로고스와 팽나무 사이에 어떤 연결이 있다고도 생각했는데요. 그런데 요즘 한국 소설들은 상대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는 작품이 적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황석영
『할매』는 짧은 경장편이지만 그 안에 서사가 응축돼 있어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420매 정도 되는 중편이지만, 그 안에 거대한 스케일이 담겨 있지요. 『할매』도 원래는 500~600매 정도를 예상했는데 현실 이야기가 들어가면서 길어졌어요. 그래서 120장 정도를 잘라냈더니 600여 매가 됐습니다.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경장편의 시대라 긴 걸 잘 안 씁니다. 거의 다 그래요.
한국 소설도 큰 작품이 많이 있어요. 내 정도의 스케일이냐고 하면 그건 모르겠지만, 하여튼 한국 소설들이 괜찮습니다. 한국 작가들이 실력도 있고 다양하고, 무엇보다 그 다양성이 좋아요. 과거에는 우리 문학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잔여물처럼 여겨지기도 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깊이에 세계가 매혹되고 있습니다. 작은 꽃부터 고목나무에 이르기까지, 이 작은 나라에서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지 놀라워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작으냐 크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다양성으로 봐야 합니다.
이런 서사의 힘은 우리의 고통스러운 역사에서 나옵니다. 오에 겐자부로가 저를 처음 만났을 때“서사가 그렇게 많은 나라에서 태어난 황 선생님이 부럽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사실 나는 그 말을 처음에는 곱게 들을 수가 없었어요. 너희들 대신 고통 많이 받고 우여곡절 겪는데, 지금도 떠돌아다니고 이러는데, 우리를 가볍게 보는 건가 하는 느낌이 들었지. 그런데 그 사람이 덧붙이기를, 자기 경우에는 그런 역사적 경험은 없지만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과의 일상에서 오는 긴장감으로 작가적 정신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울컥했습니다. 그 겸손한 태도와 진지함에. 속으로 미안하더라고.
김재준
프랑스 작가도 만나셨지요?
황석영
르 클레지오도 우리의 서사를 부러워했어요. 그런데 저는 반대로 그의 자유를 부러워한다고 답했습니다. 우리는 역사에 대한 책임이 있으니까. “이번에는 좀 자유롭게 써보고 싶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써보고 싶다” 하면 안에서“네가 정말 그럴 거야?” 하는 압력이 있는 거예요.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건 아니지요. 그래도 그게 있으니까 한국 작가들이 놓치지 않고 현실을 그리려고 노력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평범한 아주머니조차“내 이야기를 쓰면 소설 열 권은 나온다”고 할 정도로 저마다 엄청난 서사를 품고 있어요. 제가 30~40년 전에 남도 쪽을 취재하다가 목포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어느 가게에 들어갔는데, 편한 차림으로 앉아 화투를 치던 아주머니가 막걸리 한 잔 놓고 회를 썰어주면서 저보고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더라고. “소설가요” 그랬더니, 자기 이야기를 쓰면 소설 열 권이 나온다는 거야. 이 땅에 사는 백성들이 다 서사가 여기까지 차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게 바로 K-콘텐츠의 위대한 동력입니다.
2. 세계 문학의 보편성과‘민담적 리얼리즘’
김재준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결국 한국 문학의 힘은 단순히 소재가 많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세계 문학이라는 말 자체가 서구가 만든 보편성의 언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황석영
괴테가 처음 제안한 ‘세계 문학’ 개념은 사실상 유럽 문학을 뜻한다고 봐야 해요. 괴테가 세계 문학이라고 말했을 때 그의 머릿속에 아프리카가 있었겠어요, 아메리카가 있었겠어요. 없었을 거예요. 결국 그가 생각한 세계 문학은 유럽 문학이 중심인 거지요. 그리고 그 뒤 제국주의 시대로 돌아가는데, 그들이 말하는 보편성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이 “예수 믿어라” 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제사 지내지 마라, 우상 섬기지 마라” 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게 권력의 레토릭이지요.
발터 벤야민은 이야기꾼을 ‘토박이 이야기꾼’과 ‘외방 이야기꾼’으로 나누었습니다. 토박이는 공동체의 비밀과 전통을 공유하며, 나이 먹은 나무가 벼락 맞은 이야기, 갑돌이 장인의 처녀 시절 소금 장수 이야기, 동네 사람만 아는 그런 것들을 전달하고 공유하는 거예요. 외방 이야기꾼은 타지를 떠돌다 들어와 외방 소식을 전하고요. 저는 외방 이야기꾼으로서의 유리함을 가지면서도 토박이성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제 라이벌로 이문구를 꼽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그 사람 문장은 도저히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할 수가 없어요. 우리 토속어를 그렇게 쓰는 사람은 없거든. 그 사람은 아마 나 같은 소설은 못 쓸 것이고, 나 또한 그 사람 같은 소설은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늘 경외합니다.
김재준
선생님의 후기 소설들은 흔히 마술적 리얼리즘과 비교되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읽을수록 그것과는 다른 어떤 층위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황석영
맞아요. 『무기의 그늘』까지가 서구적 리얼리즘의 틀을 따르던 전반기라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저는 노트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세계가 변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 산문도 변해야 된다. 세계의 현실을 동아시아적 형식에 담겠다.” 그 시도가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로 이어졌어요.
사람들이 나까지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 영향권으로 묶어 말하는데, 나는 아니라고 했지. 라틴아메리카하고 우리하고는 처지가 달라요. 그쪽은 불러올 과거가 말살됐기 때문에 꿈과 신화의 형식으로 돌아오는 측면이 강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불러올 과거가 너무 생생하고 확실합니다. 기록된 것뿐 아니라 구전으로 내려오는 것도, 제가 30~40년 전에 시골로 다니며 동학 이야기를 물어보면“우리 할아버지가 겪었다”, “우리 아저씨가 뭘 했다” 하면서 6·25 이야기, 통일 이야기, 일제시대 이야기까지 줄줄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역사는 아니잖아요. 역사는 팩트를 찾아야 되고. 그걸 이야기로 풀어내는 게 민담이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경우에는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니라 ‘민담적 리얼리즘’인 겁니다. 민담은 민중의 일상과 역사 사이에 있어요. 그게 문학이 위치하는 지점이고, 그래서 저 스스로 민담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3. 평론의 한계와 서양 철학을 다시 쓰는 문제
김재준
선생님이 보시기에 요즘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가 있다면 꼽아 주실 수 있을까요?
황석영
젊은 작가들이 참 잘 쓰는 것 같습니다. 다만 장편은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장편을 좀 썼으면 좋겠는데, 이제 더 지켜봐야지요. 개성이 독특한 작가들도 많고요.
김재준
평론가들을 보면, 한국 문학의 큰 내용을 담기에는 오히려 평론이 좀 작은 그릇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평론가를 비하하려는 뜻은 아니고요. 제 불만은 너무 서양 철학이나 서양 이론을 가져다가 한국 문학을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습니다.
황석영
그거 아주 정확하게 짚었어요. 요즘 젊은 평론가들의 약점이 그거예요. 서구 이론 틀을 버젓이 자랑하면서, 자기 독서의 범주를 고백하는 데서 넘어서서 그 틀에 작품을 맞춰 보려고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좀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면 훨씬 나아지고 깊어지는데, 아직 젊어서 그러는 거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최근에 제가 좋게 본 젊은 평론가들이 없는 건 아니에요. 좋은 평론가들도 많습니다.
김재준
평론과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서구 철학 이론으로 한국 작품을 읽는 것 자체는 좋습니다. 그런데 그 이론의 틀로는 절대 다 설명이 안 되거든요. 늘 넘치는 부분이 있어요. 저는 오히려 그 넘치는 부분으로 서양 철학을 다시 재구성할 수 있다고 봅니다.
황석영
좋아요.
김재준
그러니까 서양 철학을 우리가 다시 쓸 수 있다는 거죠.
황석영
걔네들도 그렇게 하잖아요. 동양을 보고 그렇게 하거든.
김재준
우리는 왜 못하느냐는 거죠. 이번에 선생님 뵙기 전에 한 3주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아도르노의 이론으로 선생님 작품을 들여다봤더니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국 문학으로 거꾸로 아도르노 이론을 보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도르노 이론에 미메시스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저는 ‘콜렉티브 미메시스(Collective Mimesis)’, 즉 공동의 미메시스, 집단적인 미메시스라는 걸 한번 만들어봤어요. 서양의 미메시스는 굉장히 개인적인 차원인데, 동아시아적인 것은 집단성, 민중성이 있단 말이지요. 그래서 한국 문학을 통해 서양 철학에 거꾸로 되돌려주면서 새로 써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 작품을 읽고 서양 철학을 다시 쓴다는 취지로 평론을 써도 괜찮을지 허락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황석영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 작업이 있어야 돼요. 진짜. 지금 칼라(KAALA)재단을 하는 이유도 우리가 그런 것들을 엮어서 서구에게 돌려주려는 거예요.
김재준
그리고 제가 선생님 작품을 K-팝의 관점에서도 한번 써본 것이 있거든요.
황석영
유튜브를 이제 할 거거든요. 한번 같이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서 할 수 있겠어. 지금 얘기가 재미있는 게 너무 많이 나와서 퍼뜩퍼뜩 지나가는데, 그거 정말 좋겠다. 한국 문학을 가지고 저쪽을 얘기하는 거. 오늘은 탐색전이고, 또 오시지요.

4. ‘한’이 아니라‘흰 그늘’이다
김재준
방금 말씀하신 “한국 문학을 가지고 저쪽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말이 결국 한국 미학의 언어를 다시 세우는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황석영
맞아요. 가령 케데헌 같은 걸 만들어놓고도 정작 그 미학을 얘기할 때 자꾸‘한(恨)’이라고만 하잖아요. 그런데 그거 아니거든. 내가 늘 말하는 것이지만,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는 최고의 경지를 ‘한’이 아니라 ‘흰 그늘’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대중 앞에 젊은이가 나서서 너무 잘해. 간드러지게 잘한다고, 그걸 노랑목이라고 그러거든요. 잘하긴 하는데 그늘이 있어야지. 소리에 그늘이 있어야 된다는 건, 에디트 피아프나 빌리 홀리데이, 또 이난영 같은 목소리처럼 어떤 그늘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 그늘이 너무 짙어져서 극한에 다다를 정도가 되면 그걸 한이라고 말하는데, 신재효는 그걸 인정하지 않아요. 그건 “소리가 넘어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뭐가 나와야 되느냐. “그걸 흰 그늘이라고 하느니라. 검은 밤에 널린 흰 빨래 같으니라.” 캄캄한 데 희뿌연 거예요. 절망의 끝에서 솟아오르는 어떤 희망, 그게 흰 그늘입니다.
진도 씻김굿의 다시래기를 예로 들더라고요. 죽은 사람을 보내려고 하다 보면 슬픔이 겨워서 관객에서 무당까지 다 황천을 건너 고인을 따라갈 것 같아지는 거야. 그러면 그걸 다시 일상으로 끌고 나와야 되잖아요. 그래서 중간에 극중극으로 코미디를 합니다. 우스갯소리, 쌍소리, 음란패설도 하면서 막 웃겨요. 무당도 웃고, 상주도 웃고. 그렇게 해서 다시 삶 쪽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그걸 흰 그늘이라고 하는 거지.
그럼 마지막 최고의 경지는 뭐냐. 그걸 여향(餘響)이라고 했어요. 나머지 여 자에 소리 향 자. 먼 산사에서 종을 치면 여운이 길게 끌리다가 마침내 정적이 오잖아요. 그 정적까지를 포함한 잔향, 그게 여향이라는 거예요.
저는 그게 뭔지 도저히 감이 안 잡혔는데, 제 아들이 작곡을 해요. 내가 여향 이야기를 했더니 딱 설명을 하더라고. 서양 음악은 정확한 음을 표현하는 게 목적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해진 음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소멸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거지. “정확한 음을 표현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소멸하는 과정에 목적이 있다.” 그 말이더라고. 그래서 여향이란 말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그럼 소멸하면 끝이냐. 그건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소속되는 데가 어디냐.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걸 율려라고 하잖아요. NASA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이른바 우주의 소리 같은 게 있어요. 빛의 파장을 소리로 바꾸니까 허공이 비어 있는 게 아니라 파동과 진동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저는 소멸한 소리가 그런 큰 질서 속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대단하잖아요. 이게 조선 미학이라는 겁니다.
5. 글로벌 사우스와 제3세계 문학 연대
김재준
지금 말씀을 듣다 보니, 한국 문학의 고유한 형식과 미학을 이야기하는 일이 결국 한국이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국제정세 속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황석영
지금은 미·중 대결 구도가 심화되면서 브릭스(BRICS)나 중동, 아프리카 같은 여러 지역이 각기 다른 블록을 형성하고 권역별로 묶이고 있어요. 우리가 지금처럼 한·미·일 삼각 안보 체제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외교적으로 큰 타격을 입거나, 중국에 주도권을 완전히 내줄 수도 있습니다. 다극화 체제 속에서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면 한미동맹을 기초로 하되, 중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전쟁 이후의 러시아와도 다시 협력적 관계를 맺어야 해요.
지금은 이들을 ‘글로벌 사우스’라고 부르지만, 과거 우리가 말하던 제3세계와 맞닿아 있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어요. 반둥회의 이후 비동맹운동의 흐름이 있었고, 문화적으로는 아시아·아프리카 문학 연대가 형성됐지요. 한국 문학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기 김지하 시인을 구하려는 국제 연대가 확산되면서, 1970년대 한국 문학은 아시아·아프리카 문학 네트워크와 깊게 연결됐어요. 지금 상황하고 그때가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저는 1989년 방북 이후 망명 생활을 하면서 그들과 깊이 교류했는데, 그 흐름이 지금의 글로벌 사우스와도 맥이 닿아 있어요. 1980년대 후반 도쿄에서 거의 마지막 대회가 열렸고, 그다음은 평양이 예정되어 있었어요. 저하고 신경림 선생, 그리고 화가 몇 분이 초청을 받았는데 저는 못 갔고, 신경림 선생만 다녀오셨지요. 그러고는 사실상 흐름이 끊겼습니다.
하지만 그 맥을 살리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어요. 2010년에 전주와 인천에서 부분 복원 시도가 있었고, 2019년에는 이집트에서 다시 신호가 왔습니다. 그런데 조직 내부 사정이 복잡해지면서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냥 자주적으로 끌고 나가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우리는 단순히 한·미·일 동맹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거대한 제3세계의 문화적 리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미 그런 역사적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그걸 복원해서 우리가 중심이 되어 끌고 나가는 것이 문화 강국이자 외교적 자산을 확보하는 길이에요. 그것이 제가 마지막 과업으로 생각하는 방향입니다.
6. K-문명과 군산, 그리고 문화의 전략
김재준
최근 유행하는 여러 ‘K-시리즈’의 종착점은 결국 ‘K-문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황석영
바로 그거예요. 거기까지 가야 되는 겁니다. 우리는 제국주의를 통해 선진국이 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침략의 피해자였고, 전쟁과 분단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민중이 피땀 흘리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너희 같은 제국주의 방식이 아니라 우리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이제는 다른 방식의 문명을 생각할 때가 됐습니다.
김재준
그 다른 문명의 감각이 문화 전략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보시는 거군요.
황석영
그렇지요. 군산은 ‘식민지 근대화’와 ‘수탈’의 상징적 도시이기 때문에 이런 문화운동을 띄우기에 적합합니다. 스토리도 있고, 역사적 맥락도 맞아요. 그래서 군산에서 비엔날레 구상도 하는 겁니다. 거창한 행사 흉내를 내자는 게 아니에요. 대륙별 원로 작가 회고전에 한국 화가들이 협업하는 전시를 붙이고,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방식으로 현실적으로 가자는 거지요.
제3세계의 진면목은 다큐멘터리에 담겨 있습니다. 일본 야마가타에는 1989년에 시작된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있어요.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인데, 거기서 '우리가 놓친 작품 30편만 뽑아서 보내라, 같이 상영하자' 하고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USB 하나면 상영이 가능해서 비용 면에서도 매우 효율적이에요.
또 하나는 유라시아 알타이 연합이에요. 중국의 실크로드가 상업의 길이라면, 우리의 초원 길은 문화와 문명의 길입니다. 우리는 그 유목 연대의 길이거든요. 신화와 동화도 다 그렇게 전파됐다고 봅니다. 몽골과 중앙아시아, 북방의 신화권과 한국을 다시 연결해보자는 상상력이지요. 한반도를 막다른 끝이 아니라 연결점으로 다시 보는 겁니다.
7. 마무리
김재준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 한국 문학을 이야기하는 일이 곧 한국 미학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하고, 동시에 세계와의 관계를 다시 상상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귀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황석영
나도 재미있었어요. 오늘은 탐색전이었고, 다음에는 또 더 깊이 이야기해봅시다.
임철빈
감사합니다. 정말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김재준 편집장
국민대 명예교수
전) 한국예술경영학회 2대 회장
전) 한국문화재정학회 회장
전) 국민대 박물관장, 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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