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문화 수도 몬트리올이 서울에서 찾은 K-콘텐츠의 영리한 글로벌 확장법
K-컬처와 문화외교 — 몬트리올과 서울, 문화로 만나다
“문화는 국경을 먼저 넘는다. 정책은 그 뒤를 따른다.”
문강 편집위원회 | 2026. 04

2026년 3월, 소라야 마르티네스 페라다 몬트리올 시장이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서울을 택했다. 50명 규모의 사절단을 이끈 이번 방문은 캐나다-한국 문화교류의 해(2024–25)가 조성한 양국 관계의 성숙, 퀘벡 사회에서 높아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 그리고 무역 다변화 전략이 겹친 결과다.
1 | 문화가 먼저 국경을 넘었다
퀘벡은 영어권 캐나다와 구별되는 프랑스어 문화권이다. 이 ‘비영어권’ 정체성이 K팝 수용의 토양이 됐다. 영어 팝과 다른 감각을 지닌 K팝은 불어가 모국어인 청년들에게 새로운 문화적 레퍼런스로 자리 잡았고, 맥길대·몬트리올대·콩코디아대 캠퍼스를 중심으로 K팝 동아리와 커버댄스 대회가 확산됐다. Radio-Canada와 Le Devoir 같은 주류 언론도 이를 퀘벡 청년 문화의 주요 흐름으로 주목했다.
2 | 언론이 ‘소개’에서 ‘성찰’로
K팝 열풍이 일상화되자 퀘벡 언론의 시선도 깊어졌다. La Presse는 2026년 2월 “해법을 찾아서 — 우리 문화를 빛나게”(En quête de solutions — Faire rayonner la culture d’ici)라는 대형 시리즈를 기획해 기자를 서울에 직접 파견했다. K팝뿐 아니라 아일랜드의 예술가 기본소득 실험 등 다양한 국제 사례를 함께 다뤘다.
“한류에서 퀘벡이 참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퀘벡형 K팝(Qué-pop)은 가능한가?”
— La Presse, 2026.2.28
La Presse의 분석은 K팝의 국제적 성공 요인을 음악 자체보다 산업 시스템에서 찾았다. 국가 기관의 전략적 개입, 장기 투자, 전주기 산업 구조가 핵심으로 지목됐고, 이 보도의 톤은 자국 문화의 국제적 가능성에 대한 성찰이었다.
3 | 성찰이 교류로
2025년 11월 취임한 페라다 시장은 첫 해외 순방지로 한국을 선택했다. 몬트리올 상공회의소·몬트리올 예술위원회(Conseil des arts de Montréal)·문화창조산업 기관 및 기업 대표 50명이 함께했다.
캐나다 측은 이번 방문의 성격을 쌍방향 국제교류로 규정했다. 몬트리올 예술위원회(CAM)는 “파트너십 촉진과 수출 잠재력 강화”(promoting partnerships and stimulating their export potential)를 공식 목적으로 명시했고, 페라다 시장은 “문화를 경제의 근본 축으로 삼겠다”(make culture a fundamental pillar of our economy)며 몬트리올의 국제문화도시 지위 재확인을 강조했다. 상공회의소 대표는 “몬트리올을 아시아 교류 네트워크의 중심에 놓겠다”(position Montréal at the heart of Asian exchange networks)며 한국을 아시아 진출의 거점으로 규정했다. (CAM, 2026.1.8)
도시 혁신 모델 탐색 + 전략적 파트너십
‘북미의 문화 수도’이자 ‘AI 거점’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몬트리올이지만,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서울의 사례를 탐색하려는 목적이 뚜렷했다. 서울AI재단 및 스마트시티센터 방문은 AI 행정 서비스와 스마트시티 통합 플랫폼을 직접 확인하고 몬트리올 시정에 적용할 솔루션을 찾는 정책 탐색이었다. DDP와 성수동(젠틀몬스터) 방문은 낙후 지역을 창의적 클러스터로 전환한 사례와 로컬 브랜드의 글로벌 전략을 시찰하며, 도시 재생 및 디자인 정책에 영감을 얻으려는 창의 산업 탐색으로 읽힌다.
동시에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자산을 나누는 전략적 파트너십의 층위도 뚜렷했다. 부산문화재단-몬트리올예술위원회 MOU는 아티스트 레지던시 교환 등 지속 가능한 교류 채널을 공식화한 제도적 결합이다. 모던국악밴드 탈피의 공연—퀘벡의 국민가요를 국악으로 재해석한 무대—은 문화적 공감대와 상호 존중을 표현하는 문화 외교의 정점이었다.
미국 무역 의존도 탈피라는 거시적 맥락도 겹친다. 북미 자유무역 지형의 불안정성 속에서 한국을 전략적 교두보로 삼으려는 흐름이며, 2026년 4월 180명 규모의 Team Canada Trade Mission이 서울에서 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4 | 현장의 목소리 — 퀘벡 정부 대표부 상무관 서면 인터뷰
이 흐름의 현장에 있는 퀘벡 정부 관계자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웹진문강은 주한 퀘벡 정부 대표부 상무관에게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아래는 그 회신 전문이다.
퀘벡에서는 지금까지 프랑스어와 문화를 주로 ‘지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례를 보시면서, 앞으로는 문화 정책의 방향을 어떤 쪽으로 바꾸고 싶으신지, 개인적으로 생각하시는 점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퀘벡에서의 <프랑스어>는 퀘벡인들의 <정체성>이므로 대단히 중요합니다. 특히 현 정부가 중도보수적 성향이라 더욱 언어를 보호하고 문화 컨텐츠를 통해 널리 알리는 정책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퀘벡정부산하에 <퀘벡 프랑스어 부처>가 프랑스언어부 장관을 주축으로 프랑스어 사용을 촉진하고 보호하는 공공기관이 있습니다.
Accueil - Office québécois de la langue française
한국에는 KOCCA 같은 전담 기관이 있고,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특징으로 소개됩니다.
퀘벡의 현재 제도와 비교했을 때, 실제로 도입해 보고 싶은 부분과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은 각각 무엇인지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퀘벡 문화부> 산하에 대표적으로 <SODEC, 퀘벡 문화산업 개발공사>와 <CALQ, 퀘벡 문학예술위원회>가 있으며, 두 기관이 다른 형식으로 문화분야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SODEC: 주로 음악, 영화, 출판 분야의 제작 및 유통을 지원하고 있음
CALQ: 공연, 전시 등, 아티스트 지원사업
아마도 가장 근접하게 한국의 KOCCA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기관은 SODEC이라고 보입니다. SODEC이나 CALQ 또한, 전혀 직접적인 외부 개입이 없고 오히려, 프로젝트를 신청하게끔 플랫폼이 형성이 되어 있습니다.
SODEC - Société de développement des entreprises culturelles
Conseil des arts et des lettres du Québec
요즘에는 온라인에서 콘텐츠가 ‘얼마나 잘 보이느냐’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퀘벡이 프랑스어 콘텐츠를 온라인 플랫폼과 추천 시스템에서 더 잘 보이게 만들기 위해, 어떤 방법이나 아이디어가 가능하다고 보시는지, 장단점과 함께 자유롭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을 몇 년 전부터 특히 코로나 이후, 많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비영어권임에도 불구하고 K 컨텐츠가 많이 알려지는 것 때문에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퀘벡문화 컨텐츠 홍보를 하기 위한 연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불어권 채널인 TV5 Monde를 많이 활용하고 있으나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한국의 아이돌 훈련 시스템이나 팬덤 문화는 퀘벡의 공연예술·서커스·문학 전통과는 분위기가 꽤 다릅니다.
이런 한국식 모델 중에서 퀘벡에 맞게 참고할 만한 부분과, 굳이 따라 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상무관님 개인적인 시각을 듣고 싶습니다.
문화와 정서가 다르고 퀘벡은 다민족국가 구성원이기 때문에 한국의 아이돌 훈련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보입니다.
보고서에는 새로운 콘텐츠 진흥 기관 설립, 국제 공동제작 펀드, ‘Quebec Wave’ 같은 브랜드 구상 등 여러 계획이 제안되어 있습니다.
실제 행정과 예산, 업계와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 같은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시도해 보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가장 최근 한국과 퀘벡의 좋은 협업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4월 1일부터 에버랜드 서커스 공연장에 퀘벡의 <엘로와즈 서커스>와 공동제작한 <Wings of Memory> 공연이 내년까지 선보입니다.
퀘벡은 아트서커스의 본고장으로 이번 프로젝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에버랜드 전용 공연에 맞게 처음 기획단계에서부터 에버랜드와 엘로와즈 서커스가 함께 한 작품입니다.
이미 태양의 서커스로 우리나라에서 퀘벡의 서커스 단체들이 많이 알려졌지만, 이제는 완성된 공연을 국내 투어하는 것뿐 아니라, 공동 제작, 아티스트 교류 및 트레이닝 프로그램 등 다양한 형태로 협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무용, 음악 등 분야도 이와 같은 사례가 늘어나길 바랍니다.
(좋은 프로젝트가 있어도 예산을 받기가 어려워 중단이 된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시 또는 중앙정부 예산을 받기 어려움 등등)
한국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를 드라마, 게임, 상품 등으로 계속 확장하고, 팬들이 스스로 홍보에 참여하는 구조가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퀘벡의 음악, 책, 영화, 게임 등에서 이런 방식이 가능하려면 무엇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보시는지,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편하게 공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퀘벡은 유행이나 트렌드에 크게 민감함이 다소 없는 것 같습니다. 가령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고 해서 상품화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스타들의 <굿즈>를 만드는 것에 크게 관심을 쏟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있어도 그 종류가 다양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정말 한국분들이 잘 하는 것 같습니다. 퀘벡에서도 이 마케팅 전략을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핵심통찰
도시가 국가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몬트리올-부산 MOU, 에버랜드-엘로와즈 공동제작 모두 중앙정부 차원의 대형 협정이 아니라, 도시와 민간이 주도한 결과물이다.
한국의 지자체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몬트리올의 서울행은 도시 혁신 모델의 탐색과 전략적 파트너십,
그 두 축이 ‘문화’라는 하나의 언어로 수렴한 여정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양쪽 모두에게 아직 번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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